2025/09/02

먼저 온 미래 | 장강명

알파고 사건으로 우리가 마주할 AI 시대를 예상할 기회가 주어졌다. 장강명 작가는 프로 기사 인터뷰 등으로 알파고 사건 이후 바둑계에 일어난 변화를 조사하고, 결과에 작가적 논리와 상상력을 더해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를 예상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인가 보다.

ChatGPT 3.5 공개 이후, 인문학자나 철학자가 AI가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충분히 논의하고 유용한 관점을 제시해주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반가울 뿐더러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번 글의 주제는 “전문가”이다. 책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 IT 업계를 생각하며 의견을 덧붙여보았다.

전문가 가치의 변화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전문가, 즉 프로의 위상은 크게 변했다. 전에는 프로의 수(Play)가 아마추어에게 나침판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아마추어/프로 가릴 것 없이 AI가 제시해주는 수를 보며 왜 이게 좋은 수인지를 연구하게 되었다. AI가 권장하는 수와 높은 일치율을 보이는 대국이 곧 ‘잘 둔 바둑’으로 평가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기사들 고유의 스타일을 가리키던 기풍 같은 단어는 의미가 퇴색되었고, 기원에 웬만한 프로 기사가 와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전문가로서의 위상 혹은 가치가 추락한 것이다.

IT 업계 시니어 엔지니어의 위상

그렇다면, IT 업계의 전문가, 그 중에서도 시니어 엔지니어도 위상이 추락할까?

최근 프로덕트 엔지니어의 언급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아 업계의 동료들은 이미 답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엔지니어링은 AI가 잘한다고 보고, 그보다는 비즈니스에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효한 접근일까?

MVP, PoC 정도의 단계거나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면 유효할 것 같다. 그러나, 성장하는 비즈니스, 즉 성장에 따른 여러 기술적 도전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에서는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규모를 키우던 중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어떻게 해야 해?” 라고 AI에게 물어보면 꽤 그럴 듯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작은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 중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키텍처, 레거시 같은 기술적 고려를 넘어 조직, 문화, 역량, 로드맵, 채용 등 기술 외적인 고려가 중요하다. 현재의 AI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데, 지능 문제라기 보다는, AI가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이런 부분은 아직 전문가가 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앞으로 우리는 AI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려 노력할 것이다. 어느 순간 AI가 사람보다 회사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될 것이고, 지능 또한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시니어 엔지니어조차 풀기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을 AI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직접 해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재는 시니어 엔지니어의 가치가 여전히 크지만, 정보와 지능이 보강된 AI가 결국 그 영역까지 잠식할 수 있다.

바둑계와 IT업계의 차이

하지만 바둑계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바둑은 수학적으로 닫혀 있지만, IT는 열려 있다. 바둑은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 없이도 AI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었지만, IT 업계는 온/오프라인에 뿌리를 둔 다양한 상호작용 때문에 당장은 AI로 완벽한 제어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