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 많은 기업들이 이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가 본 대부분의 회사는 내부 효율화를 중심으로 AI 대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AI에 ‘대응하고 있다’는 말 속에 두 가지 서로 다른 흐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열심히 뛰어야 제자리를 의미하는 ‘붉은 여왕 효과’처럼 후퇴하지 않기 위한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AI를 활용해 새로운 성장을 시도하려는 대응이다. 물론 둘 다 중요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전자만 반복한다면 잘해보았자 제자리일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차별화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뒤처지지 않기 위한 움직임을 넘어서 어떻게 성장의 축을 새로 만들 것인가이다.

붉은 여왕 효과: 뒤처지지 않기 위한 움직임들

많은 기업들이 제일 쉽게 착수하는 영역은 내부 업무의 효율화다. 자동화를 통해 리소스를 줄이고, 반복적인 작업은 AI에 맡기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경쟁력 향상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유사하게 실행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수렴하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나 MCP(Model Context Protocol) 같은 대응도 있다. 이들은 앞으로 사용자 접점 면에서 중요할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어쩌면 GEO나 MCP 영역에서 성과를 낼 때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SEO만으로 영속적인 경쟁력을 만들 수 있었던 기업이 드물었듯, GEO나 MCP 역시 본질적으로는 수렴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다. 특정 기업에게는 성장의 촉매가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잘해야 기존의 접점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성장으로 이어지는 AI 활용

내가 만나본 몇몇 기업들은 지금까지 얘기한 붉은 여왕 효과에 해당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AI를 활용한 새로운 성장 모델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제자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제자리를 넘어 힘 있게 전진하기 위한 성장 모델도 고민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성장 모델은 버티컬 혹은 도메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지만,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접근 방향은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장을 위한 실험, 즉 가설 설계를 AI에게 위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A/B Testing을 할 때, AI에게 과거 실험 데이터를 넘기고, AI가 새로운 가설을 제안한 후, 앱에 바로 적용하게끔 하는 구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설계, 실행, 검증이 AI 에이전트에 의해 쉬지 않고 순환된다면, 실험의 속도와 다양성 모두에서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성장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AI 친화적인 Private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을 반복하는 구조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는 개념이 아니라, AI가 학습과 추론에 활용하기 쉬운 방식으로 구조화된 데이터를 축적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AI가 실험을 통해 더 좋은 Private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가 다음 실험의 품질을 높이는 구조가 된다면, 단순히 반복이 아닌 점점 강화되는 플라이휠 성장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이 구조가 자리를 잡으면, AI는 단지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성장의 핵심 주체가 될 수 있다. 동시에 Private 데이터는 경쟁자 중 누구도 접근할 수 없어 해자(Moat)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셋째, AI로 핵심 사용자 경험을 직접 개선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영어 회화 앱을 예로 들면 저렴한 비용으로 24시간 언제든 자연스럽게 프리토킹이 가능하게 하는 것일 테고, 의류 커머스라면 내 사진 한 장만 업로드하면 유행하는 수십 개의 옷을 입은 내 모습을 확인하게 하는 것일 테다. 이런 사용자 경험 개선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사용자와의 접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큰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AI-cooperability

우리가 현재 가진 환경에서 AI와 협력을 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위에 A/B Testing 예시에서 보면 AI가 가설을 세웠을 때 이 가설을 앱에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에서는 즉시 적용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람과 AI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AI-cooperability’ 개념이 중요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AI가 일하기 좋은 환경인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기술 환경에서 테스트가 원활히 가능한지를 나타내는 Testability처럼 시스템 설계 중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어쩌면 우리는 AI FOMO에 휩싸여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본 좋은 기업들은 이미 꽤 열심히 AI에 대응하고 있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직접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방향으로의 AI 활용을 고민해보면 좋겠다. 이처럼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시기에, 침착하게 성장 방향을 설계해 나간다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분명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